이슈메이커, 여자

프리다 칼로frida kahlol

일기님 2009. 11. 11. 11:24

수많은 자화상을 남긴 여류 화가

 

프리다 칼로 frida kahlol

 

 

ㅡ아름다운 외모와 강한 개성을  지닌 여류화가 프리다 칼로는 불행이도 평생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녀는 서른두 번의 수술과 세 차례의 유산을 겪었고, 평생불구의 몸으로 약물에 의지해 살아갔다. 그래서 그녀의 그림에는 강렬한 삶의 의지가 가득 담겨있다.

 

 

화가는 그림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다. 여기서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데 그치지 않고 그림을 통해 자신을 극복한 사람이라면 화가보다 위인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지 모르겠다. 이에 가장 적절한 사람이라면 멕시코의 위대한 여류화가, 프리다 칼로를 꼽을 수 있다.

  프리다 칼로의 인생은 정말이지 험난 했다. 그녀는 일곱 살 때 소아마비에 걸려 장애가 생겼고, 열여덟 살에는 큰 교통사고를 당해 여성성까지 상실했다. 그녀는 한평생 말 못할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이겨내며 힘겨운 시간을 보냈지만, 삶이 고통스럽고 힘겨울수록 더욱 강렬한 삶의 의지와 욕망을 표출해냈다. 프리다 칼로는 누구보다도 고통스러운 현실을 경험했기 때문에 그림을 통해서나마 아름다운 세상을 경험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림을 통해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 그녀는 자신을 이겨냈을 뿐 아니라 멕시코 미술사의 세계 미술사에 한 획을 긋는 위대한 여류 화가로 성장했다.

  사람들은 프리다 칼로의 작품뿐 아니라 그녀의 성격 취향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보였다. 그녀는 이성애적인 경향과 동성애적인 경향을 동시에 보여주면서 온갖 추측과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화려한 외모와 뛰어난 예술적 재능과 대단한 매력을 지닌 그녀는 개성 또한 강해서 사람들이 감히 그녀 곁으로 다가가기가 힘들 정도였다. 그래서 더 많은 소문과 억측이 생겨 났는지도 모르겠다.

  교통사고는 그녀의 인생에 있어크나큰 전환점이었다. 사고를 겪은후 그녀는 그림을 접하게 되었고, 비록 몸은 불편했지만 영혼의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

 

인생의 전환점

 

 

   1907년, 멕시코시티에서 태어난 프리다 칼로는 유럽계와 멕시코인의 피를 모두 물려받았다. 그녀의 생년 월일은 7월 6일로 알려져 있지만 정작 자신은 7월7일이라고 주장했다고 전해지며, 그녀는 이외에도 개인적인것에 대해 일부러 거짓 소문을 퍼뜨렸다고 한다.

  프리다 칼로의 아버지는 유명한 사진가였고, 가정 형편은 풍족한 편이었다. 그녀는 검은 머리칼에 짙은 눈썹, 큰 눈이 아주 매력적인 아이였다. 그런데 운명의 여신이 그녀의 행복을 시샘했던 걸까? 일곱 살 소아마비에 걸리면서 그녀의 오른쪽 다리가 유난히 가늘어지고 휘어버렸다. 그러나 이정도의 장애는 프리다 칼로에게 별문베가 되지 않았다. 1922년, 멕시코의 명문 국립예술학교에 입학한 그녀는 활달한 성격으로 친구들 사이에 많은 인기를 끌었다.한번은 동성 친구와의 특별한 관계 때문에 제적당할 뻔한 적도 있었다. 당시 그녀는 교내 문학 동아리 친구들과 가까이 지냈는데, 이중에는 훗날 멕시콩의 유명한 시인이 된 카롤로스도 있었다.

  프리다 칼로가 열여덟 살 되던 해인 1925년 9월 17일, 그녀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궈 놓은 교통사고가 일어났다.이날 사고로 많은 사람들이 사망 했지만 프리다 칼로는 중상을 입고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그러나 척추 뼈가 부러지고 쇄골, 늑골, 어깨뼈, 골반까지 성한곳이 없었다. 그 후 프리다 칼로는 아주 오랬동안 병마와 고통과 싸워야 했다. 훗날 그녀는 "밤만 되면 죽음의 신이 내 침대 주변을 맴돌았다," 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프리다 칼로는 엄청난 고통을 겪으면서 오히려 삶의 소중한 의미를 깨달았다. 그녀는 침대에 누워 부모님이 선물해 준 그림 도구들과 친구가 되었다. 새로운 생명을 얻은 프리다는 누구보다 강한 삶의 의지를 불태우며 그림에 몰두 했고, 그러는 동안 자기 안에 숨겨져 있던 재능을 발견했다. 그녀는 한때 죽음을 소재로 그림을 그린적이 있었다. 프리다 칼로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죽음을 조롱하고 농락했어 ,그래서인지 내 몸은 전혀 좋아지질 않았어."

  당시 이를 악물고 재활 훈련에 집중했지만 전혀 효과가 없었고, 오히려 건강이 악화되기만 했다.

  프리다 칼로는 타고난 색감을 지니고 있었다. 그녀는 진지하게 삶을 관찰하였고, 그것을 그림으로 옮기면서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껴 화가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고통의 그림자로 얼룩진 그녀의 삶에서 그림은 유일한 행복이었던 것이다.

 

사랑과 방황

 

 프리다 칼로는 1927년이 되어서야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해졌다. 1928년에는 친구의 권유로 멕시코 공산당에 가입하기도 했다. 그리고 여러 사교 모임에 참가하다 우연히 화가이자 혁명가인 디에고 리베라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프리다 인생에서 디에고 리베라와의 만남은 아주 중요한 사건이었다. 리베라를 학창시절부터 오랫동안 흠모해왔던 그녀로서는  오랜 소망이 실현되었으니,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둘은 마침내 결혼 하였고, 결혼 후 함께 열렬한 공산 당원으로서 적극적인 활동을 벌였다. 그러나 얼마 후 리베라가 반대파의 공격으로 당에서 제명당한 후 프리다도 탈당해버렸다.

  1932년, 프리다는 미국에서 선정한 '대서양을 빛낸 인물" 에 뽑히는 영광을 안았지만 그해 어렵게 가진 아이를 유산 하면서 깊은 슬픔에 빠졌다. 현실이 괴로워질수록 그녀는 더욱 그림에 몰두했다. 그리고 과감한 시도를 거듭하여 걸작을 탄생시켰다. 그러던 중 부부 사이에 문제가 생겼다. 본래 바람둥이 였던 리베라가 하필 프리다의 동생인 크리스티나와 바람을 피우다가 발각된 것이었다. 큰 충격을 받은 그녀에게 있어 리베라는 화가로서는 존중받을 수 있는 인물일지 몰라도 남편으로서는 더 이상 아무 의미가 없었다. 이 무렵 프리다 칼로는 동성애를 시작했다. 그녀는 아름답고 여성스러운 외모와 달리 매우 남성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었다. 어떤 모임에서든 거침없이 말을 내뱉고 데킬라를 퍼마셨다. 그래서인지 그녀 주변에는 늘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렇게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두 사람은 더 이상 결혼이란 굴레에 묶여 있을 수 없었고, 1939년에 결국 헤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두 사람은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다시 재혼했다.그녀는 훗날 리베라와의 결혼 생활에 대해 "항상 배고프면서도 그리웠다." 라고 말했다.

 

 

영원한 이별

 

 

  프리다는 세계적인 여류 화가로 이름을 날리며 세계 각지에 수많은 팬을 두었고, 프랑스 패션 잡지의 표지 모델이 되기도 했다. 그녀는 그림뿐 아니라 화려한 외모로도 전 세계인의 주목을 글었다. 멕시코에서는 이미 최고의 인기 화가로 확실한 자리매김을 하고 있었다.

 

 

  프리다 칼로는 평생동안 멕시코에서 단 한 번의 전시회를 열었고 1953년 봄,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아픈 몸을 이끌고 직접 전시회장을 찾았다. 비록 제 발로 전시회장에 걸어들어가지는 못했지만 이날 프리다 칼로는 가장 행복했다. 그러나 그녀의 행복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얼마후 오른쪽 다리의 피부가 괴사하면서 다리 절제 수술을 받아야 했던 것이다. 귾임없이 이어지는 가혹한 현실 때문에 그녀는 깊은 절망 속으로 빠져들었다. 불행을 이겨내기 위해 그렇게 노력했지만 불행은 그녀에게서 떨어져 나가지 않았다.

  결국 프리다는 몇 번의 자살 시도 끝에 1954년 7원 13일 고단했던 삶을 마감했다. 정확히 밝혀지진 않았지만 그녀가 일기장에 쓴 '이제 이 세상을 떠나고 싶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고 싶지 않다.' 라는 글로 미루어 사람들은 그녀의 죽음을 자살로 믿었다.

  

프리다 칼로frida kahlol

*1907년 7월6일 멕시코시티에서 태어나다.

*1925년 9월17일 교통사고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된다.

*1929년 화가 리베라와 결혼.

*1953년 생에 첫 전시회 개최 행복을 얻다.

*195년 7월 13일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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