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작가: 주자청朱自淸
침묵은 일종의 처세 철학으로 잘 사용하면 그것 또한 하나의 예술이 된다.
입이란 밥을 먹을 때 슨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어떤 이는 키스할 때 쓰인다고 말하기도 한다. 다 옳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만일 통계를 내본다면, 입은 역시 말을 하는데 가장 많이 쓰일 것이다.(어쩌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요즘 유행하는 논조에 의하면 말이란 정말 하나의 ‘선전' 으로 자기를 선전하는 기술이기도 하다. 따라서 말이란 철두철미하게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여러 신성한 이름을 대면서 절대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한 마디로 잘라 말한다면 나는 한 발 물러서면서 이렇게 말 할 것이다.
“ 말이란 어떤 때는 확실히 간접적으로 자신을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결국 직접적으로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스스로는 다른 사람을 위해 말한다고 하지만 그러나 다른 사람은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기 때문에 말을 하려고 한다거나 혹은 하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는 침묵에 대해 알아둘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낯선 사람을 보면 대게 침묵하게 된다. 물론 예외는 있다. 기차나 배를 타면 다급하게 무슨 일이 있는 것 마냥 승객이나 차 심부름꾼을 막론하고 이 사람이 저 사람에게 말을 거는 사람을 본다. 나는 그런 사람의 건강을 부러워한다. 왜냐하면 중국의 이 넓은 지역을 여행하는데 조금도 지루함을 느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낯선 사람을 보면서 침묵하게 되는 것은 대게 원시적인 공포감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요인도 있는 듯싶다. 낯선 사람의 이름을 처음 접 한다고 했을 때 당신이 보일 수
있는 반응은 자연히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이거나 방어 자세를 취할 것이다. 마치 적군을 방어 하듯, 침묵이 곧 가장 안전한 방어 전략인 셈이다.
당신은 그 사람에게 굳이 자신을 알리려고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약점을 더 더욱 보이고 싶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약점을 갖고 있지 않겠는가. 당신은 그저 상대방이 말을 많이 하도록 내버려두면 된다. 5그가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이제 그만 헤어져야 한다. 당신은 공손하게 작별을 하면 되는 것이다.
만일 당신이 이 낯선 사람들을 사귀고 싶다면, 그래도 당신은 침묵을 지키는 게 좋다. 단지 당신은 그의 말을 주의 깊게 들을 필요가 있다. 그의 말을 경청하면서 중간중간에 간단하게 찬사를 보내야 하며, 적어도 상당히 동의 하다는 표시를 해야 한다. 이게 바로 서로 친근해질 수 있는 첫 단계이며, 최소한도 마음이 통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초면인 사람이 존경하는 혹은 존경하지 않는 ‘큰 인물’일 경우, 당신은 더욱 침묵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큰 인물의 언행이나 표정과 눈빛은 뭔가 다른 면이 있다. 가장 좋기로는 당신은 뒷전에 앉아 지켜보면서 용감한 동행자에게 앞으로 나가도록 하는 것이다. 지금 내가 말한 것은 큰 인물을 우연히 만났다거나 또는 사람들과 함께 방문했을 경우다. 그렇지 않고 당신 단독으로 큰 인물을 특별히 찾아간다면 다시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내게 는 그
건 끔찍한 일이다. 당신은 큰 인물이나 거물급간의 대화를 보면서 분명 만족해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이빨 사이로 피식하는 소리를 내게 될 것이다.
말하는 것은 일종의 신경 쓰이는 일로서, 말을 가급적 적게 하거나 혹은 가능한 한 말을 하지 않거나 또는 마땅히 말을 아껴야 한다거나 아예 말을 하지 않는 것에 이르기까지 정말 다양하다. 침묵은 실제로 장수의 비결이기도 하다. 그리고 자기PR이 진실로 중요하다는데, 어느 누가 부인 하겠는가. 그러나 생명부지인 사람에게는 헛수고일 뿐이다. 그는 당신이 자신을 선전하는 취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당신의 치기어린 열정을 속으로 비웃을 것이다. 어쩌면 당신과 인사하고 악수를 나눈 뒤 깨끗이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친구와 낯선 사람과의 차이점은 그들이 당신 말을 들어줄 수 있고 또한 기꺼이 들어주려 하느냐에 있다. 즉 자랑이나 선전 따위 말이다. 이것은 굳이 교환이라고 까지 말할 필요는 없지만 교환적이라 해도 무방하다. 어쨌든 그들은, 정도 차이가 있겠지만, 당신을 이해하거나 용납하면서 당신에 대해 상당히 흥미와 예의를 갖출 것이다. 당신의 말은 그들의 호기심을 만족 시키는 가운데 매우 흥미롭게 듣게 된다. 당신의 말이 심각하거나 슬픔에 가득 찼을 때 그들이 예의를 갖추는 이유는 그들 도한 잠시나마 당신의 감정 속에 젖어들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상황에서 만족하는 것은 당신이며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긍지를 느낄지도 모른다. 그들은 ‘응당’ 고마워할 ‘가치가있는 것’이다.
그러나 설사 절친한 친구 사이라 해도 당신은 말을 너무 많이 해서는 안 된다. 똑같은 이야기나 감정 그리고 경구(驚句)나 격언 따위의 말은 중복해서는 안 된다. 당신 스스로가 상당히 자제해야 하며 당신의 말이 친구들의 마음까지도 차지할 수 있다는 망상은 버려야 한다. 마찬가지로 당신의 마음도 다른 사람이 완전히 점령할 수 없는 것 아닌가. 당신은 더욱더 당신 자신을 감추는 방법을 알아야만 한다. 다만 알 수 없고 얻을 수 없을 때야 비로소 좇을 맘이 생기는 것이다. 설령 당신이 당신의 모든 것을 누군가에게 다 준다 해도 그것은 누군가에 대해서나 이 세상에 대해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 이다. 마치 의대생들이 실습할 때 해부해 본 시체처럼 그것은 불가사의한 고독이며 당신은 자신을 지탱하지 못해 끝이 안 보이는 어둠 속에 스러지고 말 것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항상 이렇게 말하기를 좋아 한다. “나는 나의 모든 것을 기꺼이 당신께 받치겠어요.”
그의 모든 것 혹은 그녀의 모든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누가 진실로 알겠는가. 먼저 이 한마디 말부터 아는 사람은 자신의 일시적 충동을 표시했을 따름이고 기껏해야 하나의 이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 말을 자주 사용한다면 그건 그저“공염불” 일 뿐이다. 그래서 친구간이나 연인사이에도 침묵은 필요 한 것이다. 당신의 말은 밤하늘의 반짝이는 같아야지 섣달그믐 날의 요란한 폭죽 같아서는 안 된다. 어느 누가 밤새 시끄럽게 울려대는 폭죽을 좋아라하며 소중히 여기겠는가.
반면에 침묵은 가끔 시적 의미를 지닌다. 말하자면 한가한 오후에, 붉게 물든 황혼에, 깊고 깊은 밤에 그리고 크고 조용한 밤에 흐르는 잠깐 동안의 침묵은 끊임없이 밀려오는 권태로운 능가하다 못해 아름답기만 하다. 누군가 이런 경지를 일컬어 '무언의미‘라 했다. 당신 역시 너무나 예쁜 이름이라 생각 되지 않는가. 물론’염화미소‘의 경지라면 더욱 훌륭하겠지만!
그러나 침묵해서는 안 되는 경우가 있다. 사람이 많을 때는 침묵하기가 쉽지만 주인 한사
람에 손님 한사람인 상황에서는 힘든 것이다. 당신이 지나치게 침묵 하고 있으면 손님의 분노를 자아내어 쫒아 버리고 마는 격이 된다. 당신이 찾아온 손님을 그런 식으로 내쫓겠다면이야 상관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부단히 손님에게 차를 권하고, 담배를 권하고, 그림을 보여주고, 신문을 읽게 하고, 축음기를 틀어 놓든가 해야 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날씨며 시국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된다. 단지 신문에 난 기사를 다시 언급하고 몇 가지 풀 수 없는 해결책을 제시할 때는 어쨌거나 손님이 말하는 것을 척도로 삼아야 한다. 그래서 당시는 고개를 끄덕인다든지, 코를 흥흥거린다든지 때론 탄식도 하면서 맞춰 주면 되는 것이다. 그가 말을 다 맞췄다면 당신은 다시 고개를 들고 아까처럼 그대로 들어주면 된다.
내 친구 하나가 우연히 낮선 손님을 맞게 된 경우가 있었다. 그 손님은 표준적인 큰 인물로 모종의 예의상 내 친구를 찾아온 것이라 했다. 그 거물은 앉을 때 양손을 모은 채 탁자에 놓더니 몇 마디하고는 그만 입을 다물어 버리고 친구를 뚫어지게 쳐다보더라는 것이다. 궁지에 몰린 내 친구는 겨우 한두 마디 연달아 찾아가며 적당히 끌고 갔다고 했다.
이것도 물론 침묵의 한 방법이지만 주로 상사가 부하에게 위엄을 부릴 때 쓰인다. 그런데 일반 교제에 사용 한다는 것은 너무 노골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위와 같은 상황에서 주인한테 조금의 여지도 안 남겨 둔 것은 더욱 무례를 범한 것이다. 큰 인물이나 그에 못지않은 인물이 무섭다는 게 바로 이런 점이다. 사실 우리가 대처할 방법이 없는 게 아니다. 그것 역시 침묵에 달렸다. 당신도 그저 똑같이 양손을 모으고 상대방을 응시 한다면 그도 아마 어쩔 수 없지 않겠는가. 1932年 3月7日
주자청朱自淸 1948년사망한 해의 사진
1898~1948. 8 중국 北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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