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 명수필

전체와 무(無)

일기님 2009. 8. 19. 01:11

전체와 무(無)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그의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의 얼굴 뒤로(당대의 옹색한 초상화 일지라도 그는 두렸한 개성이 있는 얼굴이 었다) 그리고 그의 모방적이고, 환상적이고, 격정적인 말들 뒤에는 약간의 냉소와 아무도 꾸지 않는 꿈 이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처음엔 모든 사람들이 자신 같은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그 공허함에 대해 함께 애기한 동료의 이상한 태도가 그의 잘못을 깨닫게 했다. 어느 날 갑자기 그는, 인간은 다른 사람들과 유별나게 굴어서는 않된다는것을 느꼈다. 그리고 언젠가는 자신의 병을 고칠 수 있는 길이 책속에 있다고 생각 해서 라틴어와 희랍어를 배우기도 했다. 그뒤 인류의 원시적인 의식속에 그 길이 있다고 믿어 6월의 긴 낮잠  시간을 이용하여 앤 하더웨이의 도움을 받아 그 의식의 실험도 해보았다. 그는 스무살이 넘어 런던으로 갔다. 그는 이미 본능적으로 , 아무도 자신의 공허한 정체를 알아 차리지 못하게 짐짓 누구인 것처럼 가장하는 습관에 길들여져 있었다. 그는 런던에서 배우라는 숙명적인 직업과 만나게 되었다.무대위의 그를 극중인물로 봐주는 사람들 앞에서 누군가가되어 연극하는 것은 신나는 일이었다. 어릿광대 역할을 했을때 그는 난생 처음 행복감을 맛보았다. 하지만 마지막 대사를 외치고 무대에서 물러 났을때, 가증스런 비현실의 느낌이 그를 짓 눌렇다. 그는 더 이상 페레스나 타메들란이 아니었고  다시 아무도 아닌 나로 돌아간 것이다. 그게 싫어 닥치는 대로 영웅이나  비극 속의 인물들을 상상했다. 이렇게 런던의 매춘굴과 선술집에서 그의 몸이 몸의 역할을 하는 동안, 그의 영혼을 차지한 것은 점쟁이의 충고를 무시하는 시저, 종달새를 증오하는 줄리엣, 황무지에서 노파로 변장한 운명의 여신들과 대화하는 맥베스였다. 그 어느 누구도

그처럼 많은 인물이 되어 본적이 없었다. 그는 이집트의 프로테우스처럼 인간 존재의 모든 얼굴을 가져 보았다. 그는 때때로 공연 도중 대사에다 아무도 이해 못할 고백ㅡ"리카르도는 한 사람이 수많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야곱은 이상한 발음으로 " 나는 내가 아니다" 라고 말한다"ㅡ 등을 섞어 놓곤 했다. 존재하기, 꿈꾸기,연극하기가 동일한 일이었던 그는 유명한 장면들에서 영감을 받았다.

  

   그런 환상 속에서 생활한 지 20여년 만에, 어느 날 아침 문득 칼에 맞아 죽는 수많은 왕들과, 만났다 헤어져 고뇌하는 수많은 연인이 되기에 넌더리가 난 그에게 공포감이 엄습했다. 그는 그날 자신의 극장을 팔아 치웠다. 그 일이 있기 일주일전 그는 고향에 돌아갔었다.  그곳에서 그는 유년기의 나무들과 강을 기억 해냈다. 하지만 그 풍경을 라틴풍 어조의 극중 인물 혹은 자신의 여신을 찬양하던 그 유명한 인물들과 연결 시킬 수가 없었다. 그는 누군가가 되어야 했다. 그는, 재산을 모은뒤 은퇴하여 고리대금업을 하는 사업가가 되었다. 오늘날까지 전해 오는 그의 유언장의 무미건조한 문체는 의도적으로 감정적이거나 문학적인 수식이 배제되어 있다. 런던의몇몇 친구들이 그의 은둔처로 놀러 가곤 했는데, 그때 그는 시인의 역할을 하며 어울렸다.

 

   기록에 의하면 그는 죽기 전후에 신에게 물었다고 전한다. "헛되이 그렇게도 많은 사람이 되어 본 나는 이제 한 사람,나 자신이 되고 싶습니다.

' 일진광풍 끝에 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 역시 내가 아니다. 네가 나의 작품을 꿈꾼 것처럼, 나도 세상을 꿈구었다. 내 꿈의 여러 형태 중에는, 나처럼 모두이면서 아무도 아닌 너가 있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소설가 이자 시인 평론가

1899년 8월 24일 ~ 1986년 6월 14일

1923년 소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열기로 대뷔

1956년 부에노스 아이레스 국립대학 영문학 교수

1980년 세르반테스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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