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달
작가: 나도향(경손)소설가: 1902년 3월 30일 ~ 1926년 8월 26일
벙어리 삼룡이,물래방아,환희 외 다수..
나는 그믐달을 몹시 사랑한다.
그믐달은 요염하여 감히 손을 댈 수도 없고, 말을 붙일 수도 없이 깜찍하게 예쁜 계집에 같은 동시에 가슴이 저리고 쓰리도록 가련한 달이다.
서산 위에 잠깐 나타났다 숨어 버리는 초생달은 세상을 후려 삼키려는 독부(毒婦)가 아니면 철모르는 처녀 같은 달이지마는, 그믐달은 세상의 갖은 풍상을 다 겪고, 나중에는 그 무슨 원한을 품고서 애처롭게 쓰러지는 원부와 같이 애절하고 애절한 맛이 있다.
보름에 둥근 달은 모든 영화와 끝없는 숭배를 받는 여왕과 같은 달이지마는, 그믐달은 애인을 잃고 쫓겨남을 당한 공주와 같은 별이다.
초생달이나 보름달은 보는 이가 많지마는, 그믐달은 보는 이가 적어 그만큼 외로운 달이다. 객창 한등에 정든 임그리워 잠 못 들어 하는 분이나, 못 견디게 쓰린 가슴을 움켜잡은 무슨 恨 있는 사람이 아니면, 그 달을 보아 주는 이가 별로이 없을 것이다.
그는 고요한 꿈나라에서 평화롭게 잠들은 세상을 저주하며, 홀로이 머리를 풀어뜨리고 우는 청상(靑孀)과 같은 달이다. 내 눈에는 초생달 빛은 따듯한 황금빛에 날카로운 쇳소리가 나는 듯하고, 보름달은 쳐다보면 하얀 얼굴이 언제든지 웃는듯 하지마는, 그믐달은 공중에서 번듯하는 날카로운 비수와 같이 푸른 빛이 있어 보인다. 내가 恨이 있어 그런 사람인지는 모르지마는, 내가 그달을 많이 보고 또 보기를 원 하지만, 그달은 한 있는 사람만 보아 주는 것이 아니라 늦게 들어가는 술주정꾼과 노름하다 오줌 누러 나온 사람도 보고 어떤 때는 도둑 놈도 보는것이다.
어떻든지, 그믐달은 가장 정(情)있는 사람이 보는 중에,또 한 가장 한 있는 사람이 보아 주고, 또 가장 무정한 사람이 보아주는 동시에 가장 무서운 사람들이 보아 준다.
내가 만일 여자로 태어 날 수 있다 하면, 그믐달 같은 여자로 태어나고 싶다.
* 이 작품은 '그믐달'에서 느끼는 애절함과 한스러움을 구체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비유의 대상을 끌어들이고 있다. 특히, 직유법에 의한 표현은 대상에 대한 느낌에 구체성을 더해 주고 있다. 이를 염두에 두고서 이 작품을 읽게 되면, 그 내용에 더 큰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