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 명수필

은전 한닢

일기님 2009. 7. 3. 09:52
                               

 

  은전 한 닢                             
 
                                           작가: 피천득 1910.5.29 ~ 2007.5.25
 

내가 공개 트레이드방에서 본 일이다.

허름한 서펀트스킨아머를 두른 소서리스 하나가

어느 팔라딘에게 가서 떨리는 손으로 조드룬 한개를 트레이드 창에 올려 놓으면서

"황송하지만 이 조드룬이 복룬인지 아닌지 보아주십시오."


하고 그는 마치 선고를 기다리는 죄인과 팔라딘의 대답을 기다린다.

트레이드상대는 소서리스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룬에 마우스 커서를 대 보고


"진룬이요."

하고 거래 창을 닫는다.

그는 ‘진룬이요’라는 말에 기쁜 얼굴로 룬을 받아서

호라드릭큐브 깊이 집어 넣고 절을 몇 번이나 하며 간다.

그는 뒤를 자꾸 돌아보며 얼마를 가더니 또 다른 팔라딘을 찾아 들어갔다.

큐브속에 손을 넣고 한참 꾸물거리다가 그 조드룬을 내어 놓으며,



"이것이 정말 복룬이 아닌 진룬이오까?"

하고 묻는다.

팔라딘도 호기심 있는 눈으로 바라보더니,

"이 룬을 어디서 훔쳤어?"

소서리스는 떨리는 목소리로

"아닙니다, 아니에요."

"그러면 공방에서 주웠다는 말이냐?"

"누가 그렇게 귀한 룬을 빠뜨립니까? 떨어지면 소리는 안 나나요? 어서 도로 주십시오."

소서리스는 손을 내밀었다.

팔라딘은 웃으면서




"좋소."


하고 거래창을 닫았다.

그는 얼른 집어서 큐브속에 품고 황망히 달아난다.

뒤를 흘끔흘끔 돌아다보며 얼마를 허덕이며 달아나더니 별안간 우뚝 선다.

서서 그 조드룬이 빠지지나 않았나 만져 보는 것이다.

거친 손가락이 누더기 위로 그 룬을 쥘 때 그는 다시 웃는다.

그리고 또 얼마를 걸어가다가 어떤 골목 으슥한 곳으로 찾아 들어가더니

벽돌담 밑에 쪼그리고 앉아서 룬을 손바닥에 놓고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가 어떻게 열중해 있었는지 내가 가까이 선 줄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누가 그렇게 많이 도와 줍디까?"

하고 나는 물었다.

그는 내 말소리에 움찔하면서 룬을 큐브속에 숨겼다.

그리고는 떨리는 다리로 일어서서 달아나려고 했다.

"염려 마십시오, 뺏어가지 않소."

하고 나는 그를 안심시키려 하였다.

한참 머뭇거리다가 그는 나를 쳐다보고 이야기를 하였다.

"이것은 훔친 것이 아닙니다. 카우방에서 주운 것도 아닙니다.

누가 저 같은 놈에게 조드룬을 줍니까?

렘룬하나 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 솔룬하나 주시는 분도 백에 한 분이 쉽지 않습니다.

나는 헬포지로 얻은 룬에서 계속 룬을 모았습니다.

이렇게 모은 엘룬 세개를 엘드룬으로 조합하였습니다.

이러기를 2,285,099,025,039,363,486,784,401번을 하여

겨우 이 귀한 조드룬 하나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 룬을 얻느라고 여섯 달이 더 걸렸습니다."


그의 뺨에는 눈물이 흘렀다.








나는

"왜 그렇게까지 애를 써서 그 룬을 만들었단 말이오? 그 룬으로 무얼 하려오?"

하고 물었다.

그는 다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이 조드룬 한 개가 갖고 싶었습니다."
 
 
주제:  
 - 1) 소망을 이루기 위한 노력과 그 성취의 기쁨
 - 2) 인간의 맹목적인 소유욕과 집착의 의미
(맹목적이라 할 수 있는 이유는 동전 48닢은 각전 1닢과 화폐의 가치가 같고, 이것을 6번씩(동전 288닢=각전 6닢)이나 바꾸어서 대양 1푼(은전 1닢)을 손에 쥘 수 있었다 했는데, 실상 은전 1닢과 동전 288닢은 본질적으로 같은 가치를 지닌 것인데도 현상에 얽매여 본질을 놓치고 있다는 데서 맹목적 소유에 집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거지를 평가한다고 할 때,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동시에 보고 평가해야 함으로 피천득 선생의
(은전 한 닢)은 인간 양면성을 한눈에 들여다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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