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 명수필

십년 후

일기님 2010. 3. 6. 09:27

 십년 후

                                       작가: 변해명
“십 년 후 오늘···.”
“그래.”
“여기.”
“시간은?”
“지금 이 시간.”
“그때가 되면 우리는 어떻게 변할까?”
“명인 아기를 둘 쯤 데린 엄마가 되겠고···.”
“식인?”
“나? 나는 여전히 지금처럼 혼자겠지 뭐.”
우리는 소중한 보물이라도 나눠 가진 듯 십 년 후의 약속을 해 보며 꼭 지키자고 즐거운 마음으로 커피 잔을 높이 들었다.
우리들의 삶이 가장 성숙되어질 십 년 후의 모습을 가늠해 보며 정말 그때가 되면 저마다 한 세계를 지니고 있는 멋있는 너와 내가 될 거라는 생각에 가슴이 뛰기도 했었다.
흐르는 세월이 불안했지만 볼프강 보르헤르트의 《문 밖에서》의 주인공들이 되지 않는 한, 그리고 우리의 삶이 너무 비대하여 우쭐대며 이국에 뿌리를 내리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 십 년.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나는 그 많은 날들을 부챗살처럼 접고 십 년이 되는 날 그 자리에 가슴을 설레며 서 본 것이다.
이 땅에서 평화와 안정이 지속되어 무사히 십 년을 흐르게 한 세월에 감사하면서, 그간 서로 만나지는 못했지만 이 땅에 뿌리를 내리며 살아온 것에 감사하면서, 십 년 전 그 집이 조금도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음을 더욱더 감사하면서 그를 기다렸다.
그릴의 분위기는 십 년 전과 조금도 다름없이 따뜻했고 아담했다. 사람은 달랐지만 전과 다름없이 한 여인이 붉은 조명 아래 단정히 앉아 하몬드 오르간을 연주하고 있었다. 바하의 〈G선상의 아리아〉가 조용한 공간에 물을 담듯 채우고 있었다. 그때는 그리그의 〈솔베이지의 노래〉가 연주되었었다. 내가 꽤 좋아해서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지 모른다.
나는 식탁에 앉아 눈을 감았다. 그리고 십 년 전으로 자꾸 거슬러 오르는 나를 보았다.
내 옆 식탁에 한 쌍의 젊은 남녀가 앉으며 큰소리로 떠들기 시작했다. 우리가 십 년 전 십 년 후를 약속하던 그때의 모습 같은 젊음들이었다.
“너 그럼 언제 돌아오니?”
여자가 맥주잔을 들어 올리며 명랑한 목소리로 남자에게 물었다.
“너 정말 나랑 같이 가지 않을래?”
남자가 정색을 하듯 물었다.
“내가 무엇 때문에 너를 따라가니?”
“그럼 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 거지?”
“글쎄, 생각해 봐야겠어. 나는 내 젊음을 그렇게 곁에 없는 사람 기다리면서 멋없이 버리고 싶지 않으니까 말야.”
“넌 날 좋아하잖아?”
“좋아하는 것은 본인이 곁에 있을 때야. 너나 나나 헤어져 살면 변하지 않는다는 보장을 어떻게 할 수 있지? 사랑하는 사람 잃기 싫거든 네가 가지 마, 간단하잖아?”
“그건 안 돼,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아. 내 일생에 단 한 번 가장 중요한 기회야. 여자 때문에 포기할 수는 없어.”
“알았어, 그럼 우리 사이는 끝나는 거지 뭐.”
“그게 정말이니?”
“도리 없잖아? 내가 뭐 현대판 춘향이라고 시시하게 기다리니. 싫다 얘.”
어쩌다 남들의 이야기를 어깨너머로 들어버린 것이 민망했지만 그보다 그들이 하고 있는 이야기의 내용과는 달리 그들의 음성이나 태도가 너무도 태연한 데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십년 전 이 자리에서 나눈 남녀의 대화가 열정을 안고 고민하는 이상적인 것이었다면 이들 남녀의 대화는 분별을 앞세우고 선택하는 현실적인 것 같았다.
나는 그들의 냉정한 대화가 분명히 자신들의 입장을 밝히는 바른 태도라고 생각해 보면서도 어떤 차가운 한기에 몸을 떨었다. 너무 변한 인정에 새삼 고개를 끄덕이었다.
그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처음부터 그가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사실 그가 오고 안 오고가 내겐 그렇게 큰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이미 옛날의 약속쯤은 잊고 있을는지 모른다. 즐겁고 꿈 많던 시절 소꿉장난 같은 약속이었으니 말이다.
그는 지금 한 의젓한 사회인이다. 명예와 체면을 알고 옛 약속을 소중히 기억하는 세상모르는 나 같은 친구를 딱하게 여길 만큼 세상과 타협할 줄도 알고, 때도 조금은 묻어 있을 것이고, 그리고 설령 우리의 약속을 기억하고 있더라도 그런 따위의 약속쯤 우습게 여길 만큼 뱃심도 생겼고, 설사 이 자리에서 만난대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거나 내가 알아보지 못할 만큼 변해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는 십 년 전 내 앞에서 하던 말과는 달리 지금은 한 여인의 남편이요 두 자녀의 아버지가 되어 있으니 말이다.
나는 그릴을 나왔다. 거리는 어둠에 덮여 있었고 거리를 지나는 많은 사람들에게서 가랑잎 소리가 들려왔다.
‘하필이면 십 년 후 약속이었담. 20년 후쯤이었다면 더욱 좋았을 텐데···.’
거리의 인파가 소용돌이치더니 이내 길 따라 흐르고 있었다.
나도 그 속으로 빨려들며 달도 별도 없는 도심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변해명
1975년 김동리 선생의 추천으로 《한국문학》에 수필 신인상으로 등단.
한국수필문학상, 한국현대수필문학상을 받음.
현재 한국여성문학인회, 한국수필가협회 이사. 수필문우회 간사. 《계간수필》 편집위원.
저서 《먼 지평에》《다가오는 목소리》《길없는 길을 따라》《잊혀져 가는 우리 풍습》등 다수.
이 작품 〈십 년 후〉는 최근에 발간 된 변해명 선수필집 《주인 없는 꽃수레》에 수록되어 있다.

작가가 전하는 메시지
이 작품은 1976년에 쓴 수필이다.
1963년 나는 20대 초반의 중학교 교사였다. 함께 근무하던 영어교사와 수업이 끝난 오후면 늘, 시와 연극, 음악 등의 이야기를 하며 시골학교의 무료함을 달랬다.
그때는 전후 혼란이 가시지 않은 시대여서 10년 후 인정과 인심이 어떻게 변할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세상이 변한다고 해도 인정은 변하지 않는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고 그는 많이 변할 거라고 했다. 10년 후 그 답을 확인해 보자고 했다.
그 10년이 지나고 나니, 그의 말대로 세상보다 사람이 먼저 너무 많이 변해버린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인간에게 가장 존귀하다는 사랑 그 의미 자체도.
그 격세지감을 수필로 쓴 것이다.